지난세기 말엽이었던 1995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독서실에는 머리만 믿고 제멋대로 날뛰는 고2 학생이 하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몹쓸녀석이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잘 유지하고 있었고 집안과 학교에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터라 독서실에 몇년째 등록하고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독서실에서 그다지 공부를 하진 않았었다. 독서실 책상위 여닫이 책장에는 책도 있었지만 갈아입을 옷과 담배 지포라이터 기름 등의 아이템이 빼곡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놈이 어느날 옆자리 책상에 올려진 엄청난 두께의 영문 원서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졌다. 곧바로 독서실 실장님께 물어 국내 유명 명문대 전자공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 그 자리를 쓰고 있다는걸 알았고, 그 형을 소개시켜달라고 졸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또래였던 선배,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지 모르는 선배를 처음 만났던거다. 그 선배는 긴 시간의 대화 끝에
“니가 정말 하고 싶은게 소프트웨어라면,
그 소프트웨어로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게 지금 너한텐 중요할 거 같다”
라고 조언해 주었고 그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한 나는 오늘날까지고 그때 그말을 따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학부 3학년 수준에서 과연 알고 해준 조언일까 의문스러울 정도로 놀랍도록 정확한 조언이었다. 어줍잖게 내가 짠 소프트웨어로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그걸 몰라서 막히던 곳이 있었다.
“하드웨어를 알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이룰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거다”
라는 말씀도 기억한다. 죄송하게도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그 형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난 그렇게 전자공학을 전공학과로 선택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직업적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진 건 패기 뿐인 서툰 걸음마를 갓 뗀 병아리 개발자 단계를 지나고 직업 개발자다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근무를 하며 개발자 경력을 이어갔다. 병역특례 근무를 마치고 나서 그 회사를 나와 엔씨소프트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졸려서 다음에 계속… 다음이 있다면…ㅋ)